행복하게 사는 것에 관하여
우리 사회는 언제나 행복을 꿈꾼다. 행복이란 ?? 우리는 잡을 수 있는 존재라 믿는 순간 행복은 저 멀리 달아나는것 같다.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살으라는 가르침을 주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? 나보다 잘 난 사람을 보면 질투하고 질시한다면 포기라도 할 수 있을것 같다. 그러나 슬프게도 질시와 질투는 내 주변 사람이 더 잘나갈 때 가까운 사람이 행복해 보일 때 나와 비슷했던 사람이 더 크게 성공했을 때 생겨서 두렵다.
질시를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 행위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음을 없애기란 너무나 어렵다. 만족하며 사는 삶은 열정이 없는 것 같아 부정하고 싶지만 그렇게 노력할 수록 결과는 따르지 않아 속상한데 언론에서는 금수저의 성공하기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성공이란 밑바탕이 있어야 가능하다라며 수긍하며 인정하지만 그럴수록 세상에 대한 분노만 커지는 것 같다.
행복이란 우리가 잡을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고 행복을 누리는것은 소수여야 할지도 모른다. 모든 인류가 행복하다면 우리는 발전할수 있었을까 진화와 발전은 불편함에서 탄생한다. 그러기에 언제나 행복한 삶을 꿈꾸기보다 행복한 순간에 감사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. 우리는 알고 있다. 언제나 행복한 삶을 사는 존재는 매우 희소하다는 것을
매사에 감사하고 자연의 따뜻함에 위로받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막연히 위로 받는 순간이 있다. 그 순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날의 행복의 충족감을 느낀다. 올해 1월 1일 보리암으로 해돋이를 보러 같다.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날이 어두울 때 올라갈때는 그렇게 높은 곳인지 몰랐다. 멋있는 해돋이를 보고서 내려올때 알았다. 날이 밝았더라면 오르기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어두웠기에 계속 걸었다. 앞으로 앞으로
어쩌면 우리 인생이란 이런 행위일지도 모른다 어두운 곳에서 한 발짝 한 발짝 걷다가 가끔씩 운이 좋으면 해돋이를 보고 행복해 하지만 걷고난 뒤에 구름뒤에 가려 해돋이를 못볼 수 도 있다. 확률이란 모든 곳에 존재한다. 그러기에 인생은 흥미로운 것이다. 확률로 모든 것이 정해진다 해도 우리가 어두운 거리를 계속 걸어야 하는 이유는 가끔씩 확률이 미소짓는 순간을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힘들게 걷고 난 뒤에 본 해돋이는 감흥이 깊다. 열심히 노력한 뒤에 얻는 성공은 더 보람차기에 같은 성공일지라도 충족함을 느끼기에 우리는 노력하며 어두운 길을 걸으라고 우리의 인류의 선지자들은 우리에게 알린것이 아닐까? 노력이 모든 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. 그러나 한발짝 한발짝 걸어간 뒤에 본 멋있는 해돋이 처럼 성공하는 희박한 확률이 걸렸을 때 더욱더 행복감을 얻기위해서가 아닌가 싶다.
걷는 것을 멈추고 쉬는 것 또한 인생의 한편이다. 내가 쉬는 순간에 대해 남이 뭐라해서 기죽지 말고 나 스스로에게 너무 채찍질 하지말고 그냥 쉬고나서 다시 한발짝 한발짝 걷는 행위에서 걸을수 있는것에대해 전진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면 우리 인생이 조금은 아름답지 않을까?